가리봉동

발주 : 서울시

주관 : 도토리문화학교

일시 : 2015. 11 ~ 2016. 03

 

구로공단이 서울 디지털 산업단지로 변모한 것과 달리, 가리봉동은 구로공단의 추억을 간직한 채 옛 모습을 지키고 있다.

2003년 도시환경 정비사업지로 선정, 이후 2013년 재개발 정비예정구역 해제와 도시재생지역으로 선정되어 주민이 주체가 되는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수많은 빌딩과 화려한 아파트로 둘러싸여 ‘외로운 섬’이 되어버렸지만 대한민국 산업화의 심장이자 구로구의 가장 번영한 지역이었던 이곳, 가리봉동에서는 공단 건립 전부터 터를 일구었던 토박이들과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상경한 공장노동자, 코리안 드림을 안고 이곳까지 흘러든 조선족과 중국노동자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한데 어우러진 공간이다. 오늘도 가리봉동에서는 내일에 대한 희망과 꿈을 안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계속 되고 있다.

 

벌집촌

 <벌집촌>

가리봉 지역 현황도를 보면 벌집이 약 60%정도 차지하고 있다. 이곳에 벌집이 등장한 시기는 1970년대로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부터이다. 산업박람회를 시작으로 구로 1공단, 2공단, 3공단이 생겨났고 각 지방의 청소년, 청년들이 이곳에서 일하기 위해 상경했고 근로자들은 자신의 일자리와 가까운 가리봉동에 보금자리를 마련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당시 가리봉동은 주택난이 심했다. 이런 배경에서 등장한 것이 벌집이다. 당시에는 닭장집이라 불렸다.

현재는 벌집이라 불리는 닭장집은 한 사람이 겨우들어가는 방하나와 부엌이 전부다. 화장실은 1층에 마련된 공용화장실을 써야한다.  한 건물당 많게는 30개 정도까지 방을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벌집들이 모여 있는 곳을 현재는 ‘벌집촌’이라 부른다.

 

 

어지러운 전기선

 <어지러운 전기선>

가리봉동에서는 파란하늘을 온전히 보기 힘들다. 바로 거미줄처럼 늘어선 전기선 때문이다.

한 건물에 여러 세대가 거주하여 그만큼 많은 전기선이 필요하다. 월세, 전세로 거주민이 바뀔 때 마다 전기선 정리가 필요 하지만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는다. 바람이 불면 정리되지 않은 채 늘어진 전기선들이 창문을 툭툭 친다.

그로 인한 소음으로 주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고문

쓰레기문제

 <쓰레기문제>

가리봉동은 곳곳에 버려진 쓰레기들과 경고문이 붙어있다. 골목 골목 마다 사람들의 스트레스와 짜증이 섞인 푯말들은 쓰레기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쓰레기문제’는 쓰레기통이 아닌 곳에 쓰레기를 버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리봉동의 쓰레기들은 규격봉투가 아닌 일반 검은 봉투에 담아 버려진다. 검은 비닐봉투에 담긴 쓰레기들이 집앞, 길가에서 빈번히 속출하지만 종량제 봉투가 아니기 때문에 구청에서 수거해가지 않는다.

이런 쓰레기들이 쌓이고 쌓인다. 구로구청에서 공문을 붙여 놓았지만 아직까지 큰 효력은 없다.

 

 

공중목욕탕

 <공중목욕탕>

현재 가리봉동의 쪽방은 공단시절보다 시설이 많이 좋아져서 각 세대 당 개별 수도사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공단시절 70년대 가리봉동의 쪽방에는 수도시설이 구비되지 않아 공동우물을 사용했다. 회사 기숙사에 공동세면장만 있을 뿐이어서 천 명이 넘는 근로자들 꿈도 꾸지 못 할 일이었다. 목욕을 할 수 없던 근로자들은 공중목욕탕에서 씻어야 했다.

가리봉동에 자리하던 공중목욕탕 중 근로자들이 자주 이용하던 곳이 보영탕이다. 가리봉시장을 지나면 서울시내에서 보기 힘든 굴뚝이 보인다. 보영탕의 굴뚝이다.

가리봉은 1982년 구로공단 시절부터 여러차례 주인이 바뀌었지만 가리봉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상징물로 여전히 자리 잡고 있다.

 

 

월세 방 있음

 <월세 방 있음>

호남식당

 <호남식당>

가리봉시장

 <가리봉시장>

가리봉시장은 1976년부터 형성되었다. 80년대 공단이 있던 시절 가리봉시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었다. 시장 안팎으로 있던 고고장, 극장은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사회적 문화적 장소였다.

그러나 지금은 중국 동포들의 무대이다. 가리봉시장 중간쯤 가면 중국향신료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고 중국 간판들과 중국음식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가리봉동의 인구의 변동으로 시장도 예전만큼 활성화 되지 못해 아쉬움을 남긴다.

 

 

가리베가스

 <가리베가스>

가리봉 우마길을 ‘연변거리’ 또는 ‘가리베가스’ 라고 부른다. 가리베가스는 가리봉과 라스베가스의 합성어이다.

남부순환로105라길과 우마길이 만나는 곳은 가리봉시장 패션거리다.

1976년 가리봉시장이 생길 당시 오거리 아울렛의 앞길은 붉은 황토 길이었는데 붉은 흙길 위로 생선, 악세사리, 간식 등 좌판이 깔렸다.

옷가게, 신발가게, 가방가게 들이 줄지어 열렸던 거리가 지금은 인력시장의 영향으로 남성복, 작업복 판매량이 가장 많다

 

 

연변거리의 독특한 간판

 <연변거리의 독특한 간판>

연변거리의 상점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독특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간판이다.

현재 운영하고 있는 상점과 걸려있는 간판이 다르기도 하고 중첩으로 사용한 흔적이 보이는 간판들도 있다.

이런 간판들은 오랫동안 상권을 유지해온 가리봉동의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