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동 역사 4편
평소에 지나쳐 버리기 쉬운 일상 속 곳곳에는 드러내지 않고 그 힘을 발휘하는 숨은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정원축제, 꽃길, 조선왕릉 정릉, 흥천사… 교수단지와 함께 떠올리는 이미지들이다. 하지만 마을 안으로 들어가 지나쳤던 곳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자. 마을이 조성되었던 50년 전, 그리고 그 이전부터 오랜 시간동안 마을을 지켜왔던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교수단지의 보물들을 소개합니다!
조선왕릉 정릉
조선 태조 이성계의 두 번째 부인이자 조선의 첫 번째 왕비인 신덕왕후의 능으로, 원래 중구 정동에 있었으나 태종 9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사적 제208호이며 남한에 위치한 40기의 조선왕릉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정해진 시간, 직원 동행 하에 관람이 가능한 능침공간에서 교수단지의 풍경을 눈으로, 마음으로 담아보자!
흥천사
신덕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한 원찰로 정릉과 운명을 함께한 사찰이다. 중구 정동에 있었으나 연산군 때 불에 탄 이후 방치되다시피 했다. 현종 때 신흥암을 신흥사로 바꾸어 원찰의 기능을 하게 되었다. 정조 때 지금의 위치로 옮겨져, 철종 때 개보수를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고종 때 흥선대원군이 흥천사로 이름으로 바꾸어 직접 쓴 현판을 내렸다.
6.25 한국전쟁 때에 순정효황후가 피난생활을 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의 첫 번째 왕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어진 곳에서 조선의 마지막 황후를 지켰던 흥천사! 조선 500년 역사 속에서 조선 왕실 여성들을 지켰던 소중한 공간이다.
북악당
맹인들이 독경을 하는 당으로 대한역리협회에 속해 있다. 미아리 고개에 있던 당을 팔아 현재의 자리에 증축하고 ‘북악당’이라 하였다. 현재 북악당 자리는 현석호 전 국방부장관이 살던 곳이라 한다.
구 보호수 자리
마을을 지키고 있던 오래된 나무로 정릉내 보호수와 함께 성북구 보호수로 지정되었었다. 그러나 문화재에 대한 이식이 없던 시절, 관리소홀로 고사하였다. 주민들이 고사한 보호수 아래에 능소화를 심어 보호수 위로 자라게 하기도 했으나, 2014년 보호수 자리에는 마을공원이 조성되고 보호수를 대신해 화살나무가 심겨졌다. 주민들의 추억과 안타까운 마음이 담긴 공간으로 후손들에게 교훈을 주는 장소이기도 하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시간을 가져 보는건 어떨까?!!
어수정
마을에서 사용하던 공동우물로 1970년대 초까지 우물을 이용했다는 주민이 있다. 마을 건너편 돈암동에서 물을 길어다 먹을 정도로 물맛이 좋았다고 한다. 과거 임금에게 진상하였다하여 ‘어수정’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물맛이 뛰어났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 물맛을 볼 수 없음이 아쉽다… 다시 어수정의 물맛을 볼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성심교회
마을 내에 위치한 미니교회로 방주형태를 띄고 있다. 내부에는 두세명이 앉을 수 있는 위자가 두 줄 있다. 서울에서 가장 작은 교회일 것으로 생각된다. 성심교회보다 더 작은 교회가 있다면 제보해 주시길…
보국사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기와집이라 한다. 현재 지붕을 제외한 벽과 담장 등을 시멘트로 개보수하였다. 건축학적 관점에서는 모르겠으나, 주민들의 기억 속에서는 가장 오래된 공간이다.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일상을 돌아보며…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왔다면, 잠시 짐을 내려놓고 주변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져 보자!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도 소중하게 느껴지는 시간 속에서 또 다른 추억이 쌓이길 소망하며…
[출처]: http://story.sinna.us/34519